일상 & 작은 생각들
미용실에서
opento
2019. 8. 21. 17:41
단골 미용실이 열지않는 요일에 우연히 찾아들어간 집 근처 미용실엔 30~40년 된 고객들이 많아 나이대들이 60대에서 80대까지 이른다.
뽀글이 파마를 하는데 3만원. 개발하지 않은 허름한 건물에 오랫동안 싸게 세들어 운영하니 시설이라곤 야매 미장원 수준이다.
나의 경우, 그 곳에서 앞머리와 정수리만 펌을 하고 커트는 단골 미용실에서 하는데 커트값이 더 비싸다.
단골 미용실은 '헤어살롱' 이라 뽀글이 파마는 원장이 하지않아(자존심인듯) 일주일이면 펌이 어디갔지? 할 정도로 야리야리 웨이브를 넣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 미용실 조합인데 뽀글이 미용실은 좀 특이한 곳이다.
강남 개발 초기부터 살아온 토박이 주민들과 또 그만큼 같이 해온 미용실 원장은 오랜 세월 서로 이야기 나누면서 세련된 헤어샵에서는 들을 수 없는 세상사는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앉아있는 나머지 손님들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십년지기처럼 이야기 나누는데 대부분 삶에 대해 엄청난 내공들을 가졌다.
전직 교수, 은행원,외교관, 공무원, 의사 ,법관 등을 했거나 그들의 아내들이었거나.
지위도 지위지만 살아가는 방식이 아주 단단하고 본받을 만한 점도 많아 몇 달에 한번 가면 이야기 듣느라 푹 빠지다 나온다. 그들에 비해 젊다고 여겨 나름 귀여움(?)을 받는 편이고 내 나이 또래의 손님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서로 모르는 손님끼리도 뭔가 한가지 이야기를 꺼내며 서로 살을 붙이며 의견들을 말하는데 반론이나 따지는 법은 거의 없고 좋은 말들이 더해지는 경향이 있다. 길에서 지나쳤으면 나이든 노인들이라 여겼겠지만 이야기 나누다보면 가진 재산이나 자손들의 라인업이 대단하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삶에 대한 자세들ㅡ근검, 절약, 교육 등.
그런데 한바탕 이야기들을 하고 파마가 끝나 집에 갈 즈음이면 같이 이야기 나누었던 상대방들의 신상이 완전히 드러나고 무언의 서열이 형성된다.현재 그 사람 자체가 아니고 재산과 자손의 성공 정도와 자손들의 결혼여부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을 어제서야 간파했다. 여유있게 자리잡은 부처님처럼 이야기 끝에 모두의 점수를 받게되는 사람은 '다복하다' 여겨지는 사람.
또하나 눈에 띈 사실ㅡ나이대가 있는 분들이 꼭 묻는 것이 남편과 같이 사느냐는 것. 어제의 경우 대부분이 사별하여 혼자였다. 그래도 나중에 기가 살고 죽고의 여부는 재산과 자손.
나이 많은 노인들 사이에서도 가진 것, 이루어 놓은 것이 적다는 것이 상대적 박탈감, 열등감을 일으키고 교류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니 주부에게 주어진 '대과업'은 집안을 일으키는 것인가보다.
영화 < 기생충 >에서 보듯이 섞이지 못하는 벽이 있는 듯도 하다.
그런데 '다복한' 노인들의 상태는 대화 중에 남들이 물어서야 알 지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는 반면, 애매하게 가지고 있거나 있어보이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더 드러내려 하는 모습도 관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