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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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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5. 14. 23:20
거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빈둥대고 있다.
마주 보는 창을 열어둔 탓에 바람이 느껴지는데 춥지도, 세차지도 않은 부드러운 초여름 바람이다.
약간의 찻소리가 저 밑에서 올라오는데 그리 시끄럽지 않다.
지난 겨울 폭설이 내린 후 저녁 가로등에 내려다 보이던 저 아래 정원은 황금빛 눈송이로 엄청난 그림을 그렸었는데 바로 그 장소에서 봄엔 꽃들이 뚫고 나오더니 이젠 연초록 잎사귀들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눈을 감고 바람소리를 들으니 마치 쉴 새없이 흘러가는 물 같다. 그 가운데 움직이지 않고 떡 버티고 있는 바위가 된 기분.
물을 따라 열심히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어야 하는 건지. 변화에서 멀어져 게으른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물을 만지며 잘 가라고 그리고 많은 곳을 여행하라고 악수나 해본다.
오랜 여행 후 다시 산 위에서 흘러내려 올 때 역시 순식간에 지나가는 순간에 아주 작은 이야기나 들을 수 있을런 지는 모르겠지만.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지만 실은 21층 공간에 떠있다.
평화로운 초여름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