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카테고리 없음 2021. 5. 16. 00:15

대학 졸업 후 결혼해서 미국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1년 반 동안 남자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었다.
교사 한 분이 편찮으셔서 5월부터 그 반 담임을 대신 맡게 되었는데 신입교사가 그렇듯이 열정인지 극성인지로 반을 뒤집어 놓았었다.
빈부 차가 극심한 동네라 장관집 아들부터 멀리 나가 장사하느라 며칠 집에 부모가 들어오지 못해 어린 누이와 집을 지키는 애들도 있던 서울의 특이한 동네.
성적이 부진한 아이들은 방과 후 남겨 공부 시키고 등록금 내지못하는 아이는 월급으로 돕기도 하고.
같은 학년을 3 명의 교사가 가르쳤는데 내가 맡은 반들이 중간고사에서 평균이 16점이 높아 난이도를 엄청 낮추어 중간고사를 다시 치루는 초유의 사태도 있었고. 나이든 교사들이 다가와선 살살 놀며 쉬며 가르치라는 말도 하고.
어떤 담임을 통해 사적으로 과외를 해달라는 제안도 받았지만 그 자리에서 거절했던ㅡ거절한 내가 대단한 게 아니고 지극히 정상인데 그런 심부름을 할 정도로 부패한 교사들이 더러 있었다.
담임반 아이들과 참 친했는데 집에도 오고 당직 때도 와서 옆에서 공부하고.
1학년은 아직 귀엽고 순진한데 2학년 만 되어도 남자티 낸다고 집으로 익명의 전화를 해온다거나 하교길에 줄줄이 몇 명이 따라오곤. 집까지 따라와 간식을 주면 양말에서 나던 발고랑내가 ㅋ.
교무실에서 일하다 고개를 들면 밖에서 보고 있다거나 출근길에 복도 저쪽에서 매일 마주 치던 녀석도 있고 (나중에 상담선생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사춘기에 나름 혼자 좋아했던 것)
결혼 후 다른 교사들에게 감사인사 차 만났을 때 전해들은 말ㅡ화장실에 낙서가 엄청 났단다.
그 옛날이라 그런 일들이 있었지 요즘에야 그렇지않을 텐데 돌이켜보니 나름 재미있는 추억이다.
그런데 오늘도 역시 스승의 날 선물이 카카오로 도착했다.
가난하고 부모님이 돌 볼 여유가 없었던 아주 작은 꼬마ㅡ그 아이만 특별히 봐 준 것도 아닌데ㅡ결혼 후 미국으로도 편지하고 중간에 끊겼는데 ㅡ결국 소식을 알아내선 다시 연락을 해 온 아이.
그 후 스승의 날이면 선물을 꼭 보내온다. 그 아이 ( 이젠 어른) 기억에 고마운선생으로 남아있는 왜곡된 생각이라고, 그냥 보통 사람이라고 해도 한 고집한다.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라나. 해병대도 아니고~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자신은 어른이 보내주는 물건이 없는데 연말에 내가 보내준 대게 등을 받으니 자기 아내나 처가에 으쓱해진단다. (받기만 하니 미안해서 크리스마스에 아이들 주라고 이런저런거 챙겨보내곤 했다.)
에고... 그러다보니 스승의 날 선물을 받은 세월이 꽤 된듯하다.
받는 나는 부담이 되어 그냥 인사, 안부 정도면 충분한거 같은데... 알에서 깬 병아리가 처음본 대상을 부모라 여기고 따라다니는 기분이랄까.
긴 세월 동안 저녁 한번 사주고 양쪽 집 상 났을 때 잠시 2번 본 것 뿐이 없는데...
어쩌면 어린 시절 자기를 돌 봐주던 어른으로서 각인된 선생님에 대한 추억을 지니고 싶은거라 생각하여 상징적 어른 노릇을
해주기로 했다.
그 아이가 스승의 날이라고 연락을 해 올 때 까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