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를 사러가다

일상 & 작은 생각들 2011. 1. 27. 18:45


제사를 물려받은 후 처음으로 시장에 가서 문어를 사봤다.
평소엔 아는 어시장 주인이 대신 사주었는데.

재래시장 나들이라고 본 것은 있어 두툼하게 옷을 입고 나갔으나
치명적 실수가 평소처럼 얇은 스타킹에 구두를 신고 간 것.

문어와 조기를 사러 갔지만 시장초입에서 벌벌 떨리기 시작.
그리하여 첫 집에서 시물시물 살아 돌아다니는 녀석을 구매.
상인도 첫 마수라며 13만원에 주었다.

삶아주는 곳에 가보니
나이든 아저씨가-젊어서는 한 인물 하셨을-밀려 들어오는 문어들을 삶아내고 있었다.

팔려온 문어들은 머리를 잡혀서 훌러덩 뒤집히고 머리 속 내장들이 제거된 후
색이 다른 비닐끈으로 묶인다-비닐끈의 한쪽을 잘라 기다리는 주인에게 주면 나중에 그것이 교환권.
다음엔 큰 함지박에서 대강 씻기고 솥이 붐비면 함지박에서 대기-아니면 뜨거운 솥으로 직행.
지켜보다보니 아주 크고 강한 놈들은 머리속 내장이 없는데도 양동이를 부여잡고 한참을 몸부림친다.
약한 것들은 곰방 기진해버리고.

이미 생존기능이 다 사라졌는데도 저렇게 애쓰는 걸 보니
설령 놓아준다고 해도 , 아니 바다에 넣어준다고 해도 결코 살아갈 수 없는데도-
함지박에 놓여진 텅빈 머리의 문어들이 병원의 시한부 말기환자들 같이 느껴졌다.

대형문어가 들어 왔는데 나이든 아저씨가 잠깐 자리를 비워 그 문어는 바닥을 헤매고 다니기 시작.
지켜보니 연신 돌아다니는데 어디에 눈이 있나.....?
조금 있다 보니 가게 아주 구석진 곳 의자 뒤에 몸을 오그리고 나름 숨어있었다...에고.....
잡혀 역시 머리가 역시 훌러덩 뒤집히고
함지박에서 대강 씻긴 후
너무 불행하게도 마침 솥도 비었고 너무 큰 사이즈라 혼자 솥으로 넣어졌는데
함지박에서 목숨이 다 끊어진 후 솥에 넣어졌다면 뜨거움까지 겪게되지는 않았을텐데....
솥에 들어가서도 한참을 움직여댔다.


옛날 선비가 글 쓸 때 사용했던 먹물이었다고
‘점잖은 물고기’라 여겨 글월 문(文)자를 사용하여 문어(文魚)라고 이름 붙였다던데
참 나...
다 인간 마음대로다
그래놓곤 잘근잘근 씹어 먹으니.

어쨌거나 문어 삼는 시간이 생각보다는 엄청 오래 걸려
30분도 더 있은 것 같은데 나의 발이 동상 걸리기 직전.
게다가 솥에선 꺼낸 뒤에 물빼고 식힌다고 한참을 걸어두는데...
"이제 주세요"하곤 재촉해서
우불두불 두루렁 걸어서 겨우 조기 사서 차에 타곤 히터 틀어 다리를 마사지.
돌아오는 길에도 한참 지나도 발이 얼얼했다.
재래시장엔 풍성하고 싸지만 수고가 따른다.
그런데 한번 다녀오면 반성은 많이 하게 된다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들에.

힘든게 상인들만은 아닌 것이
춥다고 발 시렵다고 이렇게  힘들었다고 엄살인데
뜨거운 물에서 죽어간 문어들은 정말 미치고 팔짝 뛰다 죽었을거다.

두루두루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