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돕다

카테고리 없음 2022. 2. 27. 18:29

젊어 여행할 땐 호기심 왕국으로 지역을 샅샅이 돌아다녔다. 미술관, 박물관은 기본.
그후론 아름다운 풍경에 눈이 가고.
다음엔 얽혀있는 역사나 사연에 귀 기울이게 되고.
요즘엔 보는 장면이 통으로 들어온다.
그러면서 한편 드는 생각이 '이 장면에서 나는 그저 구경꾼이고 스쳐가는 사람일 뿐. 결코 섞일 수도 없고 섞이고 싶지도 않고...
무엇을 보고 있으며 얻으려는거지?
지난 시절 같이 여행했던 지역이라면 지금은 돌아가시거나 커서 떠나거나 이사 간 이 들을 그리워하는 장소가 되버리기도 한다.
문득 지금 같이 여행 중인 일행들을 미래에 몹시도 그리워하게 될 수도 있겠다 싶으니 가슴 한구석에서 슬픔이 느껴진다.
나를 명랑하고 긍정적이고 강하다고들 주위에선 생각하는지라 요며칠 약간 슬플 때 위로받을 사람이 없다.
혹 전화라도 한다면 상대방이 오히려 아주 길고긴 자기 이야기를 할 상황이 일어날 확률이 크다.
내가 위로해줘야할 사람들이 더 많다.
내가 그렇게 중심이 잡혀 항상 잘 지내는건 아닌데...
단지 약한 이야기를 내뱉는거 싫어하고 하지않는다 뿐인데.
자기연민이 습관될 것 같아서.
얼마 전 CH가 외롭고 불안한 마음을 비췄고 ㅡ정말 그렇게 느껴서 나에게 SOS를 한 거다ㅡ잘 다독여 주었는데 정작 나에게 얕은 살얼음처럼 낀 슬픔을 내가 다독여주어야 한다.
왜 슬프냐면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외국으로 가기도 하거니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보기 때문이다.
나에겐 돌봐주는 수호령(천사랄까?)이 있는 것 같다.
살아오면서 위험에 처하지도 않고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으니.
부모님, 신 일것 같은데 감사하다. 그러니 조금 슬프면(많은 사람들이 많은 슬픔을 겪으며 살아가니) 내가 나를 잘 다독여야겠다.
영화를 본다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금방 잊힐 수도 있는 슬픔인데 그렇게 지워버리지 않기로 했다.
따뜻한 욕조에 발부터 천천히 담그고 조금씩 물에 앉듯이 그렇게 곰곰 잘 들어가서 슬픈 마음을 달래고 닦아내야겠다.
때 밀듯 슬픔도 살살 씻어내는 습관을 들이다보면 처리하며 익숙해질 듯.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노쇠한 어느 날 깨끗한 침구에 누워 주위를 조용히 한번 보고 세상 나들이 잘 하고 간다고 편안히 눈감는 날이 있겠다.
금방 다가올 날은 아니지만 그 날의 상태로 점점 몸과 마음이 변할테니 마음닦기.
노화와 죽음 맞이 연습이라고 해야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