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 살아가기

일상 & 작은 생각들 2013. 3. 12. 21:15

 

 

 

 

방배 황실 자이쪽에서 고속버스 터미널 쪽으로 서리풀을 걷기 시작.

아침 햇볕을 등에 지고 걸으려고. 봄볕이니까...

2주 전엔 잔설이 남아 질척질척하더니 이제는 제법 걸을만 했는데

길폭이 좁다보니 본의 아니게 모르는 이들의 이야기들을 듣게되는 경우가.

앞서가는 아줌마 세 명이 사방 3m 면 다들리게 남편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데

그렇게 크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집저집 할 것 없이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서겠지.

 

 

 

몽마르뜨에선 개 두마리(코카스패니얼)를 데리고 풀밭에 앉아있는 젊은 여자와 한참 이야기.

독신인 것 같은데 10년째 키우는 개들-거의 식구, 분신, 자식 수준.

개에 대한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바지 궁둥이가 축축 젖어있었다. 겉으론 마른 잔디인데 속에선 봄기운에 녹은 얼음이 녹아.

 

 

 

 

 

점심 식사 후 산책 나온 직장인들도 많은데

그중 어째 산책을 해도 고위직이 앞에 걷고 뒤에 졸졸 걷는 그룹이있어

어째 법원관계자들 같다 했는데 역시 그랬다.

그런데 높은 자리의 그사람이 외로울 것 같다는 느낌.

 

 

 

J와 오랫만에 이야기를 나누려고 나온 산책인데

종알종알대다 조용한 시간도 가지면서 나름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는데

 

 

마지막 고속버스 터미널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걸린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시계 상표가 KAIROS

크로노스(KRONOS)와 카이로스(kAIROS)

전자는 물리적으로 흘러가버리는 객관적 시간

후자는 '각 개인이 구현해내는 독특하고도 주관적인 시간으로 내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기회의 시간이며

영원과 잇대어 있는 진리를 알아가는 희열의 시간, 예술가가가 자신의 작품을 탄생시키느라 몰두하는 시간'인데

산책을 끝내는 시점에 "너는 지금 어떤 시간의 삶을 살아가니?'라고 묻는 것 같아 뜨끔.

 

 

금방 망가져 멈춰버릴 것 같은 낡은 시계가 KAIROS라고 알리는 바람에

갑자기 강력한 force를 지닌 존재로 머리 속에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