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내린 날

일상 & 작은 생각들 2020. 12. 13. 13:20

올해 첫눈이 내린다.
습한 눈이라 내리는 족족 녹아버릴 것 같아 대강 챙겨입고(털모자를 쓰니 머리가 엉망이래도 감춰주니 좋네!) 아파트 단지를 걸어다녔다.
나무에 눈이 쌓이는 장면이 나에겐 좋아도 인터넷, 사진 세상에선 흔하고 흔하겠다.
놀이터 주변을 가니 급하게 만든 눈사람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어 구경하기 좋다.
눈,코,입에 팔이 달린 전형적인 눈사람, 균형은 안맞아도 '눈사람이구나~'라고 말해 줄 수 있는 것, 아침 먹으러 들어오라는 채근에 덩어리만 남기고 간 추상적인 눈사람 등.
그래도 다 독특하고 정감있다.
사람들은 말, 노래만 잘 하는게 아니라 예술도 잘 하는구나.
가족들이 나와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아빠와 나온 경우가 많은데 (일요일이니 엄마는 할 일이 많다.) 걸음마를 겨우 뗀 아기의 뒤를 쫒아가는 한 아빠는 혹시 눈사람 만들자고 할까바 되도록 멀리서 보게하는 모습도 보인다.
코너를 돌아 단지의 넓은 길로 들어섰을 때 깜짝 놀랐다. 대로 한가운데 크리넥스 휴지통 크기의 직사각형 틀로 찍어낸 눈덩어리 한쪽 코너 위에 동그란 볼 모양을 떡! 하니 올려 놓았는데 존재감이 그야말로 킹짱이다.
누굴까? 아방가르드, 현대적 눈작품을 길 한복판에 꽝 찍듯 세운 사람이.
조금 더 걸어가다 다행히 주인공을 발견했다. 6살은 넘어보이는 자녀를 가진 아빠가 아이와 신나게 눈싸움을 제대로 하고 있었는데 옆에 문제의 직사각형의 플라스틱 틀이 보이고, 그 틀로 벽돌쌓듯 많은 양의 눈을 확보해놓곤 손으로 뜯어가며 눈덩이를 만들어 던지고 있었다. 아이보다 아빠가 더 신난 듯. 살짝 그 장면을 찍으려 했으나 급히 나오느라 충전하지 못한 배터리는 그 순간에 방전되었다.
하지만 내 머리와 가슴은 그 장면을 잘 기록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