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두펌프

일상 & 작은 생각들 2009. 2. 16.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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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수돗가  한 구석에 물 펌프도 있었던 집에 살았다.

달밤에 언니와 목간을 하다가 차가운 펌프 물을 언니 등에 부었던 것 같다.

약이 오른 언니도 같이 물을 퍼붓고.

시끄러운 밤 소란에 회초리를 든 엄마의 등장에 후다닥 도망가느라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뜨렸던  놋쇠 세수 대야의 ‘쩡’ 하던  소리가 기억에 울린다.

마당 구석에 잘 숨어 우리를 찾지 못하고 도로 들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곤

팬티바람의 우리는 킬킬 거리고 다시 재미있게 놀기 시작하고.



대학시절 홍도로 갔을 때도 민박집에서 많이 떨어진 곳에 펌프가 있었다.

하루 종일 땀에 절어 자기 전에 세수에 머리까지는 감아야 했는데

남자 아이들이 한 명씩 여자아이들을 에스코트 해주었다.

그때 펌프질을 해주면서 옆에 서있던 남자 아이의 목소리.

시간이 지날수록 왠지 어색해하고 말도 더듬던.

지금 생각하니 미소가 지어진다.

열심히 머리를 감는 여자 아이의 하얀 목을 내려다보려니

나름 심란했겠구나 하고 말이다.



물 펌프의 약점인지 사용료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주 적은 양이지만 먼저 물을 넣어주어야 물을 쏟아낸다.

(원리를 아는 사람은 ‘아 무식한~’ 하겠지만)

그러면서 이런 생각으로 끌고 가본다.

이미 사랑의 마음이 가슴 속에 90%는 있는데

서로에게 부어주는 10%가 모자라 말라가는 일상의 모습이 많지 않나....


그러니 많은 사랑도 필요 없고

아주 조금만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그러면 많은 물을 얻게 되니 남는 장사 아니냐고 말이다.